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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 26~30>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1-26 조회수 : 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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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26)>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계속하셨으며, (당신을 찾아온) 군중들을 (끔직이) 사랑하셨습니다. (어떤 계기에) “(바로 여기 있는) 이 사람들, (하느님 나라에 대한 내 말씀을 듣고 깨달아) 나를 따르고 있는 이 수많은 군중들이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형제들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기에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형제들인) 것이다.”라고 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두 가지 조건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더 이상 (요구되는 것은)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나름대로 좋은 마음[지향]을 갖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설명[풀이/해석]들에 따라, 어렵사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왔다고 할 지라도,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뿐입니다.(산타 마르타의 집 평일미사, 2014923)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27)>

어릴적 제 기억에는 (성당 주일학교 때) 교리시간에 늘 네 가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 죽음과 심판과 지옥과 영광입니다. (죽음 후에 맞이할) 심판 후에는 이런 것[상황]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요, 하느님 아버지, 이것[판결]은 저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니다, (그 판결은) 진리다.[전혀 틀리지 않았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항상 너와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너는 네 마음을 살피지 않았고, 너는 주님의 영원하심으로부터 멀어지도록 계속 놔두는 위험을 느끼면서도 (마음을 돌리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동떨어진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산타 마르타의 집 평일미사, 20161122)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28)>

예수님께서는 유심히 그 (빈곤한) 과부(가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는 행위)를 보시고는, 당신의 제자들을 향하여 똑 같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정반대되는 모습에 주목하도록 하셨습니다. 부자들은 크게 과시를 떨면서 자기 수중의 여윳돈에서 (얼마를 꺼내) 헌금함에 예물을 넣었지만, 과부는 자신을 낮추고 온 마음을 다하여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루카 21,4; 마르 13,44 참조) 봉헌하였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섭리와 그분께 의탁하는 것이며, (이는) 보상받을 것에 대한 생각은 온전히 뒤로한 채 형제들 가운에 더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우리) 눈 앞에 (보이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하여 (이미 쓸 만큼 쓰고) 남은 것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것들 중에서 떼어내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우리의) 어떤 목적을 위해 먼저 사용하고 난 후가 아니라, 우리가 지닌 것들을 남겨두는 것 없이 즉시 (형제들을 위하여) 내어주라는 것입니다.(삼종기도, 2015118)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29)>

예수님께서 미리 예견하여 선포하신 성전파괴는 역사의 종말을 언급할 때 (묘사하는) ‘역사의 마지막 장면은 아닙니다. 사실 이 말씀은 언제 어디서 (그러한 성전파괴가 벌어지려고 할 때에) 이러한 표징들이 나타나겠는지 알기를 바랬던 청중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성경의 전형적인 묵시적 언어로써 답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두려움과 걱정의 노예로 남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님께서는 항상 굳건하게 섭리하시는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 안에서) 선을 이루시는 활동으로 동행하신다는 확신을 지니고,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모습으로) 역사를 살고 악을 무찌르는데 힘을 쓰도록 불렸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은 더 높고 더 강합니다. 하느님을 사랑이십니다.(삼종기도, 20191117)

 

<카톡으로 만나는 우리 교황님(30)>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힘은 복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환난, 고난]의 시기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 앞에 계시다는 사실과, (그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 동행하심을 (결코) 멈추지 않으신다는 것을 (반드시) 믿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박해는 복음에 대한 (단순한) 반대[모순]라고 생각할 것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일부분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만일에 그들[박해자들]이 우리의 스승을 박해했다면, (그래서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린 상태라면), 어떻게 우리가 그 투쟁[박해/환난/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이 세상의) 세찬 회오리 바람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결코)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악마보다도 더 악하고, 마피아보다도 더 악랄하고, 어두운 음모보다도 더 음습합니다. 어떤 이들은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살갗을 벗겨 이익을 취하고, (찍어 누를 듯한) 오만한 힘으로 다른 이들의 삶을 짓밟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지금도) 땅에서 울부짖는 아벨의 피의 소리를 늘 듣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복음이 아무런 힘도 못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다른 이()”를 항상 찾아 나설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삼종기도, 2017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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