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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부활 대축일/죽어야 살리라/배 광하 신부
작성자 : 원근식   작성일 : 2017-04-15 조회수 : 2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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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살리라


‘알렐루야’를 노래하는 기쁜 부활입니다. 부활이 그토록 기쁜 까닭은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난다 함은, 이미 죽었던 경험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육신으로 죽었든 영혼으로 죽었든, 죽었던 영육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기쁨이며 환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가운데 부활을 기뻐합니다. 아직 육신이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부활을 기뻐하는 까닭은 훗날 영원한 부활을 믿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사순의 긴 시간 동안 죽음을 연습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을 죽여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예수님 진리를 온 몸으로 살아보았기 때문에 부활이 기쁨인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내 자신의 고집을 죽이고, 이기심을 죽이고, 교만함을 죽이고, 욕망을 죽이고, 결국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의 평화를 위하여 내 자신을 죽이는 희생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부활이 기쁨인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그의 대표적 시인 ‘서시’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하며 노래하였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진정 자신의 모든 것을 죽이며 아름다운 희생과 투신의 삶을 살아가는 고귀한 이들에게 바치는 찬사일 것입니다. 부활이 내게 그리 큰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아직도 희생의 참된 가치를, 죽음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나의 희생으로 함께 사는 삶이며, 동시에 여러 아픔과 분노와 좌절에서 일어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함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절망에 쌓인 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죽었던 삶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또다시 소생된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벅찬 발걸음은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루카 24, 13~35 참조).

우리의 삶은 자주 엠마오로 곤두박질치는 나락의 희망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 같은 어둠의 삶에서 빛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삶이 진정 부활의 삶입니다.

     [말씀자료 : - 배 광하 신부 - I 편집 : 원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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