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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일/누가 저의 이웃입니까?글:양승국 신부
작성자 : 원요아킴   작성일 : 2016-07-09 조회수 : 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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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루카 10,25-37)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평생토록 풀어야할 숙제 하나> 성인(聖人)중의 성인,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을 지냈다. 

성인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여러 덕행 가운데, 참으로 마음에 드는 것 한 가지는 ‘만인형제애(萬人兄弟愛)이다. 

그분에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다 형제요 자매였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내편이건 저쪽 편이건, 내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건, 나를 성가시게 만드는 존재이건, 모든 것이 다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 담긴 소중한 존재였다. 

당시 나타나면 다들 멀찍이 돌아가곤 했던 나병환자를 온몸으로 포옹했던 성인이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자매인 죽음이여!” 

늑대는 형제요, 비둘기는 자매였다. 오늘날도 프란치스코 성당 복도 한쪽에는 한 쌍의 흰 비둘기가 살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바깥으로 날아가지 않고 성당을 지키고 있다. 

철저한 자연주의자, 환경운동가, 생태주의자, 인본주의자, 평화주의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성인의 그런 모습 앞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다. 물고기든, 산짐승이든 뭐든 움직이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기를 쓰고 생포하려는 제 모습과 너무나 크게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만인형제애’의 원천은 어디일까요? 바로 그의 참 스승이신 예수님 이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백성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들, 별것도 없으면서 쓸 데 없는 우월주의에 빠진 유다인 들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당신의 뇌리 속에 가득 차 있던 ‘만인형제애’를 드러낸다. 

당시 유다인 들에게 있어 이웃은 동족들뿐이었다. 하느님 구원의 대상도 이스라엘 백성뿐이었다. 지독한 선민의식이다. 

그럼 다른 민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들을 모두 통칭해서 ‘이방인’이라 불렀다. 사람취급도 안했다. 구원되든 안 되든 상관할 바 아니었다. 

이런 그들 앞에 예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개념을 다시금 설정해주신다. 

본문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유다인들 입장에서 봤을 때, 인간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참된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다른 등장인물들, 사제와 레위인, 그들은 유다인 가운데서도 유다인 이였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인간 이하의 행동이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준 행동 하나 하나를 따라가 보시오. 그는 참된 봉사가 무엇인지? 참사람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여러 행동 가운데 눈여겨 볼 것은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이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한 생명이 내 눈앞에서 고통 받고 있다는 그것이었지, 그가 유다인 이든 사마리아인이든 상관없었다. 그가 북한주민이든 남쪽 사람이든 문제없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위험에 처한 한 사람의 생명, 그것만이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의 과제 하나는 사랑의 대상, 사랑의 개념, 사랑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나가는 것이다. 


말씀자료:살레시오 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 승국 스테파노 신부[편 집:원근식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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