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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자비를 베푸소서! -김찬선 신부
작성자 : 원요아킴   작성일 : 2015-10-24 조회수 : 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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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마르코 10,46ㄴ-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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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는 외칩니다. 사람들이 말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언제 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절박했습니다.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질병도 낫게 하시는 분이란 소문입니다. 그의 애절함은 마침내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그를 불러오너라.” 주님의 말씀에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러고는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눈을 뜬 바르티매오는 평생 ‘그 순간’을 간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감동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의 감동에 우리 역시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에게 내려졌던 은총이 얼마나 위대하고 따뜻한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애절한 무엇이 없는지요?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그 무엇’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 ‘그 어떤 일’입니다. 바르티매오의 심정이 되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우리는 눈먼 이가 아니지만 영적으로 눈멀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면 누구나 영적으로 눈먼 이와 같습니다.


오늘의 묵상 


자비를 베푸소서!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바르티매오라는 앞 못 보는 거지와 예수님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우리가 길가에서 자주 만나는 그런 거지이고 전철에서 우리의 작은 자선을 바라는 그런 앞 못 보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별로 자신을 눈여겨보지 않아 눈길은 받지 못하고 발길에 자주 차이는 존재일 뿐입니다.그래서 그는 소리로서 자기의 존재를 알려야만 합니다. 그것도 작은 소리로 알리면 아무도 보지 않기에 큰 소리로 알려야 합니다. 

저를 한번 봐 주십시오. 유명인사와 선남선녀만 보지 마시고 이익이 되는 사람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보지 마시고 저도 봐 주십시오 하고 외쳐야 합니다. 

그것도 작은 소리로 알리면 아무도 보지 않기에큰 소리로 알려야 합니다.저를 한번 봐 주십시오.유명인사와 선남선녀만 보지 마시고 이익이 되는 사람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보지 마시고저도 봐 주십시오 하고 외쳐야 합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안 듣는 건지, 못 듣는 건지 모르지만 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니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진짜 보지 못하는 사람은 구걸하는 맹인이 아니라 맹인을 보지 못하는 멀쩡히 눈 뜬 맹인들입니다.눈뜬 맹인 중에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에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사람도 있고 못 본 척 할 필요도 없이 무시하고 안중에도 없는 사람도 있고 재수 없게 왜 눈에 띄고 알장거리냐고 불쾌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바르티오매오와 맹인들은 보지 못하는 괴로움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인간으로 봐주지 않는 그 소외와 그 비인간화가 더 큰 괴로움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르티매오는 나자렛 예수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그는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러 세웁니다.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예수께 대해 하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청하는 마음을 더 간절 하게하기 위함인지 주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시고 사람들은 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그러자 바르티매오는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 바르티매오처럼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를 알고 겸손하게 그러나 용기 있게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바르티매오의 이 간청의 기도는 미사의 시작 때 자비를 구하는 기도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이 기도를 마음을 다하여 바치지 않고 미사 형식으로, 그래서 건성으로 바쳤습니다. 아니 이 기도가 싫었습니다. 특히 옛날 기도문은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였기에 더 더욱 기도하기가 싫었습니다.'내가 왜 불쌍해?'하고 거부감이 있었고 자비를 구해야하는 인간처지에 대해 불만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미사의 기도문 중에 정말 마음으로 기도하는 한 부분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우리 인간은 정말 불쌍한 존재들입니다.이제는 바르티매오 못지않은 간절한 마음으로 자비를 구합니다.아직도 다른 인간에게는 자비를 구하지 못해도 하느님께만은 자비를 구합니다. 

이렇게 간절히 구하자 그 간절함이 예수님께 도달하였나 봅니다.드디어 주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 하십니다. 오늘의 복음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 중에서 그 한 사람의 소리를 들으시고그 한 사람을 향하여 바라보시고, 그 한 사람에게 응답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군중으로 한 인간을 소외시키고, 그래서 군중 속에서 고독합니다.그래서 간혹 하느님은 저 많은 사람 때문에 나의 기도는 못 들으신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많은 사람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하지도 않으시고, 소외시키지도 않습니다.이렇게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너한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너보다 유력한 사람이 도움 청하니 너를 도울 겨를이 없다 하지 않으십니다.다만 더 겸손하게 그러나 더 간절하고 큰 소리로 청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주님, 저와 저의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말씀자료 : -김찬선신부- [편집 : 원근식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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