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곡본동성당:::
  • 
  • 

홈 > 성당소식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중 제21주일/주님처럼 꼭 그대로/장재봉 신부
작성자 : 원요아킴   작성일 : 2015-08-22 조회수 : 2188
파일첨부 :

572.jpg



연중 제21주일 | 묵상 


생명의 빵에 관한 담화 끝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되풀이하여 강조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이 말씀으로 제자들에게도 불신이 스며들어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기를 포기하고 떠나간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스승이시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담화 전부를 '살'이라는 말을 근거로 전개하셨다. 그 살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먹어야만 하는 당신의 살이다. 이제 결론을 내리신다.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살도 피도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하고 믿음을 고백하도록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그분의 파스카 안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얻기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 "사람의 아들이 전에 계셨던 곳으로 올라가시는 것을" 볼 때에 제자들은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물으신다. " 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우리는 그분을 따르기를 멈추고 떠나 버린 제자들처럼 떠날 것인지, 아니면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하고 대답한 베드로와 함께 열두 제자의 그룹에 계속 머무를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한다. 


그것은 신앙의 모험이다. 참으로 믿는 존재가 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일지라도, 어느 누구도 그의 구체적인 실존 상황과 믿음의 고백 사이에 놓여 있는 차이를 직접 가늠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예수님만을 믿으며, 그분께서 주시는 빵으로 양육되어 날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하여야 한다. 


572-1.jpg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 6,60-69)




주님처럼 꼭 그대로 

주님께서 이루신 빵의 기적에 한층 마음이 들떠 신이 나서 따르던 군중이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팍, 김이 샜습니다. “별 같잖은 소리 다 듣네”라며 툴툴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썰물처럼 떠나 버리다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그들의 속내가 훤히 보입니다. 딴에는 빵 몇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의 배를 불리시는 초능력자 주님을 왕으로 모시려는 순수한 마음을 몰라주는 일이 서운했을 것도 같습니다. 기껏 상의해서 내 놓은 좋은 의견은 딱 잘라 무시하는 그분 처신이 심히 야속했을 것도 같습니다. ‘오는 정’에 ‘가는 정’을 듬뿍 담아 왕으로 모셔주겠다는데 이리 묵살하시니,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라는 불평이 터져 나왔을 법도 합니다. 불편한 마음속에 ‘말씀’이 제대로 들어설 리가 만무하니, 그날 그들이 말씀이 ‘어렵다’고 투덜대고 돌아선 까닭을 이해해 봅니다. 

세상은 그분의 말씀을 거북하게 여깁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복음적 삶을 비위에 거슬려 합니다. 그분과의 동행을 힘겨워합니다. 주고 주고 또 주고 비우고 낮아지고 철저히 상대를 위한 먹이가 되는 일은 가당찮다 합니다. 

성당에 출석하는 사람은 교인입니다. 그러나 성당에 나온다고 모두가 그분의 제자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성당만 들락거리는 발바닥 교인을 원하지 않고 당신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제자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따로 노는 종교인들에게 “나를 따른 것이 아니라 배불리 먹은 빵 때문이라”고 질책하지 않을까 염려해 봅니다. 

주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참된 계시입니다. 내 생각으로 희석하거나 내 마음에 좋은 대로 해석하여 ‘그대로’ 실천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뜻을 왜곡하는 행위도 주님의 진심을 모독하는 무엄한 짓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오시어 당신의 몸을 생명의 빵으로 먹이시는 희생을 감수하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에는 이토록 절실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분처럼 꼭 그대로’ ‘그분만큼’ 풍성한 생명과 사랑을 전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일이 참 많습니다. 이야말로 내 안에 그분을 모셔놓고서도 모른 척 왕따 시키는 횡포입니다. 그날 광야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고 투덜대고 거부하며 떠났던 군중의 모습입니다. 

솔직히 세상이 그분을 불신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참 행복을 삶으로 증거해 보여주지 못한 탓이 큽니다. 그분을 따르는 우리가 그분께서 주시는 ‘축복’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탓입니다. 그분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따돌림당하는 원인은 결국 우리가 시시하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못난 삶이 세상에 그분의 말씀을 ‘궁금’해 하지도 않고 ‘소망’하지도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분의 몸인 교회를 우습게 생각도록 몰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를 통해서 주님의 살과 피를 산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를 먹고 마시는 특은을 누립니다. 감히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필리 3,21)을 꿈꾸는 신비의 존재로 살아갑니다. 

바야흐로 세상은, “사람들은 자신과 돈만 사랑하고 허풍을 떨고 오만하며, 남을 중상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며, 감사할 줄 모르고 하느님을 무시하며, 비정하고 매정하며, 남을 험담하고 절제할 줄 모르며, 난폭하고 선을 미워하고 배신하며, 무모하고 교만하며, 하느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면서 겉으로는 신심이 있는 체하여도 신심의 힘은 부정할 것입니다”(2티모 3,2-5)라는 성경 말씀처럼 타락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피와 살을 먹여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려 하십니다.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생명의 빵을 먹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랑조차 저울에 달아 손해 보지 않는 조건 안에서만 나누려는 우리를 향해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무어라 답하시겠습니까?............◆ 

[말씀자료 : 장재봉 신부(가톨릭신문) / 편집 : 원 근식 요아킴]
이전글 가족이 함께 찬미 노래와 기쁨을 나누는 곳으로 초대합니다.
다음글 초대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