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곡본동성당:::
  • 
  • 

홈 > 성당소식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대림 제4주일/마리아의 순종과 성탄/글:이기양 신부
작성자 : 원요아킴   작성일 : 2014-12-20 조회수 : 2074
파일첨부 :
오늘의 묵상


어느 날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를 갖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처녀 신분에서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삶이 뒤바뀌는 현실’입니다. 
당황한 마리아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반문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천사는 이렇게 답합니다. 모든 일의 원인은 주님이심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자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종’임을 고백하며 받아들일 것을 약속합니다. 

무명의 시골 처녀에서 성모 마리아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누구라도 사건 속에 담긴 ‘주님의 뜻’을 모두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사건에서는 짐작을 합니다. 아픔이 길잡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마리아의 반응은 이 한마디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살다 보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사건을 만납니다.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어찌 내 자식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그때 우리도 마리아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프고 또 아픈 이 고백을 시도해 보라는 것이 대림 시기 네 번째 주일의 가르침입니다.


대림 제4주 보음묵상 

마리아의 순종과 성탄                       - 이기양 신부- 


임종을 앞둔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식들을 불러 앉히고 부인에게 루카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긴 채 
이 말씀을 들은 다음, 자녀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기고 하느님께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얘들아, 방금 들은 것을 절대로 잊지 마라. 하느님을 무조건 신뢰하여라. 
그분의 자비를 결코 의심하지 마라. 나는 너희를 사랑하지만, 내 사랑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느님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느님 중심으로 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자식들에게 자기의 재산이나 
무덤 관리에 대해서 유언을   했을 터이지만 일생을 하느님 안에서 살고 하느님에 대한 
소설을 썼던 그였기에 하느님을 가장 귀중한   유산으로 자녀들 가슴에 깊이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탄을 앞두고 일생을 하느님 안에서 사셨던 성모 마리아를 만납니다. 
어느 날 문득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인사를 드리며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는 말씀을 전달
합니다. 깜짝 놀란 마리아가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하고 반문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루카 1,35-37)  고 알리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며 주님의 뜻을 받아들였고, 
인류를 구원 할   메시아를 이 세상에  낳으셨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욕망을 
가까이하다가 힘든 인생살이와   죽음을 벌로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 이 세상에 죽음과 저주를 가져왔다면 성모 마리아의 순종은 구세주 탄생으로 
이어져 이 세상에 축복과 구원을 가져다줬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은 축복과 구원이지만 자기 욕망을 따르는 삶의 
결과는 죽음과   저주라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줍니다. 이것은 비단 아담과 하와 시대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똑같다는   것을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이스라엘 첫 번째 임금 사울입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큰 은총 속에 
이스라엘 첫 번째 임금으로 뽑혀 영광의 자리에 올랐지만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못하고 
결국 자기 욕망을 찾다가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 성경 시대 인물들에게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에도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마치 아담과 하와 시대를 방불케 합니다. 
하느님을 떠나 스스로 서보려고 자기를 믿고 욕망을   추구하다가 죽음의 길로 떨어졌고, 
노예 같은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아담과 하와의 어리석은 모습들이   지금도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죽음 문화를 상생 문화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오늘   
성모 마리아께서 보여주셨습니다. 내 지식과 경험을 떠나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때 생명과 축복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환자들의 소망을 들어주셨습니다. 소경이 눈뜨기를 
청하면 볼 수 있게   해주셨고, 나병 환자가 고쳐주시기를 청하면 손으로 만져서 치유해 
주셨지요. 예수님은 죄를 짓고 죽음에   처한 여인을 용서해 주셨고, 세 번씩이나 당신을 
배반했던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품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청하는 사람을 결코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삶의 중심을 하느님 말씀에 두고 현실
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삶이라는   것을 생활에서 체험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


편집:원근식 요아킴 
이전글 주님 세례축일/글:최인각 신부
다음글 성모시니어아카데미 종강식 슬라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