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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의 날 - 첫째 미사/행복하여라/말씀자료:유광수 신부
작성자 : 화곡본동성당   작성일 : 2016-11-09 조회수 :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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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 5,1-12) 
행복하여라(마태 5, 1-12)
                                                             -유 광수신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이들! 그들이 위로를 받으리니. 행복하여라, 온유한 이들! 그들이 땅을 차지하리니.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에 따르면, 원죄는 세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 첫째는 우리가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함이고, 둘째는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탐욕이고, 셋째는 비록 행복이 찾아지는 곳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함이다. 이것이 원죄 이후의 인간의 상태이고 조건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나서지만 잘못된 곳 즉 탐욕을 쫓아가고 있으며 비록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을 알면서도 우리의 의지가 나약하기 때문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주 넘어진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행복을 인간에게 되찾아 주러 오셨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우리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제시하셨고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가를 가르쳐 주셨다. 즉 오늘 복음은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인간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약도로서 행복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행복에로 초대받은 이들이며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예수님한테 배우는 사람이고 그래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예수님이 제시하신 행복의 비결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이 제시해주신 행복의 비결을 배우고 그렇게 생활하도록 노력하자. 예수님이 제시해주신 행복의 비결은 즉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여덟 개의 길이 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 길만이라도 제대로 간다면 행복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여덟 가지 길은 서로 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첫째,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 이란 말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자서전과도 같은 말이다. 즉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얼굴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신 분이시다. 마음이 가난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실 수 있었다.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코전 8,9) 그래서 바오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5-7)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둘째, 슬퍼하는 이들이란 하느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와 똑같이 우리의 죄 때문에 슬퍼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불행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고, 인간이 지은 죄를 보시고 우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 많은 죄를 지었으면서도 아무런 슬픔이 없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다. 

셋째, 온유한 이들이란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온유한 그분의 모습이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이며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온유한 마음만이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은총으로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가장 큰 불행은 완고한 마음이다. 

넷째,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만이 거짓과 불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의로움이란 하느님의 것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이다. 하느님의 것에 대한 주림과 목마른 사람만이 하느님을 찾아 나선다. 예수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의 주림과 목마름 때문에 인간을 찾아 나섰듯이. 

다섯째, 자비로운 이들이란 하느님의 공동체에서 사는 이들의 모습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가 6,36)고 말씀하신 것 같이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요, 하느님의 공동체이다. 

여섯째,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란 현실의 진리를 밝히신다. 즉 이 세상 종말에 가면 현재의 것들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마지막 날에 승리하는 자는 마음이 깨끗한 이들이다. 그들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그 도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흉측 한 짓과 거짓을 일삼은 자도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도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다만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들뿐입니다."(묵시 21, 27) 

일곱 번째,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란 자기 신원에 맞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자녀라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해야 할 일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평화를 가져다주러 오셨다. 이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는 폭력적인 방법으로가 아닌 사랑의 방법이다. 따라서 사랑으로 평화를 건설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산 위에서 가르쳐주신 산상설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요약한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떤 생활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진복팔단은 병들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치유시켜주는 약이며 거짓과 탐욕과 불의로 병든 우리의 마음을 낫게 해주는 진리이다. 


편집 : 원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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