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곡본동성당:::
  • 
  • 

홈 > 성당소식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연중 제13주일/불멸의 존재로 창조된 인간/배 광하 신부
작성자 : 원요아킴   작성일 : 2015-06-27 조회수 : 2052
파일첨부 :

559.jpg
연중 제13주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마르코 5,21-43) 


불멸의 존재로 창조된 인간 



▤ 불멸의 힘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한 귀부인이 소시마 수사를 찾아와 슬픈 눈빛으로 묻습니다.“‘영혼의 불멸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사람들은 말합니다. ‘네가 죽으면 무덤에 묻히고 그 무덤에는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으며 너는 세월 속에 잊혀져버린다.’ 그런데 어떻게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요?”소시마 수사는 부인의 슬픈 눈동자를 읽고 심오한 권고를 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당신이 한 사람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면 그의 영혼이 죽지 않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때 영혼의 불멸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 그는 비록 죽었으나 영원히 나에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을 극진히 사랑한 그 사랑이 그를 영원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면,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살아남게 하시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오늘 지혜서의 저자는 그 옛날 하느님의 계시와 예지로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지혜 2,23). 

하느님의 인간사랑은 실로 끝이 없으십니다. 유한의 인간이, 그것도 인생살이의 여러 고난에서 허덕이는 가엾은 인간이, 끝내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면 그야말로 비참함의 말로일 것입니다. 때문에 집회서의 저자도 일찍이 이렇게 한탄한 바 있습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오는 날부터 만물의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날까지 모든 사람에게 몹시 힘든 일이 맡겨졌고 무거운 멍에가 아담의 아들들에게 지워졌다. 그들의 고민과 마음의 두려움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 그것은 바로 죽음의 날이다”(집회 40,1-2). 

결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 하느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인 우리 인간의 끝이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 우리가 끝내는 영혼이 불멸하리라는 사실을 주님께서는 분명히 보이셨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도 치유될 수 없었던 하혈하는 부인이나, 죽었던 회당 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것도 불멸의 희망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 탈리타 쿰! 예수님께서는 하혈하는 여인의 병을 고쳐 주시며 희망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마르 5,34). 

그리고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는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시며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탈리타 쿰!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 한다 일어나라!”(마르 5,41) 

결국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희망을 걸다가 끝내 이 세상에서 종말을 고할 슬픈 인생이 아닙니다. 때문에 어떠한 역경과 고통에서도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 하신 명령은, 희망을 살지 못하고 세상살이에서 절망의 발걸음으로 쓰러져 허우적대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명령의 말씀인 것입니다. “일어나라!”입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으실 것처럼 보이셨던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도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같은 확신이 있었던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7-19). 

이제 우리는 또다시 일어나 희망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도 희망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현세에 희망을 두고, 현세의 희망에 상처와 절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세의 영원불멸의 생명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이 결코 절망으로 다가올 수 없는 법입니다. 그같은 의미에서 브라질의 유명한 인권운동가인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구속하는 외부의 힘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할 때, 그 무엇보다도 내면적 해방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머릿속에 떠올리자. 자기 자신의 노예인 자가 어떻게 다른 이들을 해방시킬 수 있겠는가? 모든 이를 위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자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이다.” 

자기 자신이 먼저 현세의 죽음에서 희망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오늘은 또한 교황주일입니다. 영원한 희망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와 교황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자료 : -배광하신부- / 편집 : 원 근식 요아킴]
이전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다음글 용서의 기도/이 해인 수녀